SK하이닉스, 7월에 40조 받고 8월에 40조 태웁니다 — 한 달 사이 무슨 일이
SK하이닉스가 오늘 이사회를 열고 40조43억원어치 자사주를 사서 전부 태우기로 했습니다. 국내 상장사 자사주 소각 가운데 역대 최대입니다.
그런데 이 회사, 불과 한 달 전에 나스닥에 주식예탁증서를 상장하면서 40조231억원을 조달했습니다.
두 숫자의 차이가 188억원입니다. 0.05%.
두 발표를 나란히 놓으면
| 2026년 7월 · ADR 유상증자 | 2026년 8월 · 자사주 소각 | |
|---|---|---|
| 방향 | 주식을 찍어 돈을 받음 | 돈을 들여 주식을 없앰 |
| 금액 | 40조 231억원 | 40조 43억원 |
| 주식 수 | 신주 1,779만 주 | 2,407만 주 |
| 주당 가격 | 224만 9,751원 | 166만 2,000원 (8/18 종가) |
| 일정 | 신주 상장 7월 29일 | 8월 20일~11월 19일 취득 |
7월 건은 외국 기업이 미국에서 한 자금 조달 가운데 역대 최대였습니다. 265억 달러 규모로, 신주 1,779만 주를 기초로 ADS 1억 7,790만 주를 발행했습니다. 조달한 돈은 전액 시설자금으로 쓰겠다고 밝혔고요.
그리고 한 달 뒤, 거의 같은 금액을 주식을 없애는 데 쓰겠다고 합니다.
금액은 같은데 주식 수는 다릅니다
여기가 이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같은 40조인데 오가는 주식 수가 다릅니다.
7월에는 1,779만 주를 내주고 40조를 받았습니다. 8월에는 같은 40조로 2,407만 주를 사들입니다. 628만 주가 더 많습니다.
이유는 하나입니다. 주가가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7월 발행가는 224만 9,751원이었는데 8월 18일 종가는 166만 2,000원입니다. 26% 하락했습니다. 같은 돈으로 더 많은 주식을 살 수 있게 된 겁니다.
두 거래를 합치면 발행주식 수는 628만 주 줄어듭니다. 7월에 늘린 것보다 8월에 없애는 게 많으니까요.
공교롭게도 시설자금이 필요할 때는 비싸게 팔았고, 주주에게 돌려줄 때는 싸게 사는 모양이 됐습니다. 의도한 순서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결과만 놓고 보면 회사로서는 나쁘지 않은 두 번의 거래였습니다.
오늘 발표의 세부
| 항목 | 내용 |
|---|---|
| 규모 | 40조43억원 |
| 주식 수 | 2,407만 주 (발행주식 7억3,049만2,365주의 약 3.3%) |
| 취득 기간 | 8월 20일부터 약 3개월 |
| 처리 | 취득 종료 후 전량 소각 (소각일 미정) |
| 주주환원 기준 | 누적 FCF의 50% 범위 내 → 50% 이상 |
| 정책 기간 | 2025~2027년 |
주주환원 기준을 바꾼 게 실은 더 큰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상한이던 숫자를 하한으로 뒤집었으니까요.
회사가 밝힌 결정 이유는 이렇습니다. 사업 경쟁력과 현금창출력, 중장기 성장성 같은 내재가치가 지금 주가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고 봤다는 겁니다. 쉽게 말해 주가가 쌀 때 사겠다는 뜻입니다.
발표 타이밍도 눈에 띕니다. 이날 코스피는 5.8% 급락했고 SK하이닉스도 9.75% 빠져 150만원대까지 밀렸습니다. 장이 끝난 뒤에 40조를 꺼낸 겁니다.
약속을 앞당겨 지킨 겁니다
이번 발표가 갑자기 튀어나온 건 아닙니다.
회사는 2024년 11월에 이미 계획을 밝혀뒀습니다. 2025년부터 2027년까지 쌓이는 잉여현금흐름의 50% 범위 안에서 주주에게 돌려주겠다고요. 그러면서 조건을 하나 달았습니다. 현금흐름이 크게 늘면 정책 기간이 끝나기 전에 앞당겨 집행하는 것도 검토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조건이 채워진 겁니다. 2026년 2분기 말 기준 순현금이 약 69조원입니다. 빚을 다 갚고도 남는 현금이 그만큼이라는 뜻입니다. 인공지능 서버용 메모리가 팔리면서 만들어진 돈입니다.
40조를 쓰고도 29조가 남습니다. 이 회사가 3년 뒤에나 하겠다던 걸 지금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25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주식을 찍어 돈을 마련한 게 처음은 아닙니다. 다만 그때는 사정이 정반대였습니다.
2001년 6월, 당시 이름은 하이닉스반도체였습니다. 해외 주식예탁증서를 발행해 12억 4,998만 달러, 약 1조 6,000억원을 조달했습니다. 증서 1장당 12달러, 보통주로 환산하면 주당 3,100원이었습니다. 새로 찍은 주식은 보통주 기준 5억 2,082만 주.
회사는 "재무구조 개선"이라고 설명했지만 사실상 살아남기 위한 조달이었습니다. 그러고도 부족해 그해 10월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2003년 3월에는 21주를 1주로 합치는 무상감자를 했습니다. 주식 52억 주가 2억 5,000만 주로 줄었고, 감자 직전 주가는 135원이었습니다.
감자가 모든 주식에 똑같이 적용됐으니 2001년에 찍은 5억 2,082만 주도 21분의 1이 됐습니다. 약 2,480만 주입니다. 오늘 없애겠다는 2,407만 주와 3% 차이도 안 납니다.
같은 양의 주식을 그때는 1조 6,000억원 받고 내놨는데, 지금은 40조원을 주고 거둬들이는 셈입니다.
짚어둘 것
첫째, 40조는 앞으로 3개월간 사겠다는 계획입니다. 8월 18일 종가로 환산한 수치라 주가가 오르면 실제로 사는 주식 수는 줄어듭니다. 소각 예정일도 아직 안 정해졌습니다.
둘째, 7월 ADR을 받은 투자자는 지금 손실 구간입니다. 224만원대에 받았는데 166만원대니까요. 회사가 40조를 태우는 게 이들에게 좋은 소식인 건 그래서이기도 합니다.
셋째, 이번이 끝이 아닐 수 있습니다. 추가 환원의 규모와 방식은 현금흐름과 시장 상황, 배당가능이익을 따져 3분기 실적발표 때 안내하겠다고 했습니다. 고정배당과 특별배당을 포함한 배당 확대안도 검토 대상입니다.
넷째, 2001년 GDR 주주가 25배를 벌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21대 1 감자를 맞았고 채권단 출자전환으로 지분이 더 희석됐습니다. 위 비교는 회사가 같은 양의 주식에 매긴 값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본 것이지 개인 수익률이 아닙니다.
정리
7월에 40조231억원을 받고 주식 1,779만 주를 찍었습니다. 8월에 40조43억원을 들여 2,407만 주를 없앱니다. 금액은 0.05% 차이로 거의 같고, 주가가 26% 빠진 덕에 주식은 628만 주 순감소합니다.
이걸 가능하게 한 건 순현금 69조원입니다. 2024년 11월에 "현금이 많이 쌓이면 앞당겨 돌려주겠다"고 해둔 약속을 3년 앞당겨 집행한 셈입니다.
25년 전 3,100원에 주식을 넘겨야 했던 회사와 같은 회사입니다. 그 거리를 생각하면, 오늘 숫자보다 그게 더 놀랍습니다.
